그리스도인의 언어생활 우리는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키 작은 삭개오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삭개오의 이야기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눅 19: 2)"고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구절 속에는 깊은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삭개오>란 이름에는 <청결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청결한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부모가 지어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란 구절이 바로 뒤이어 나오는데, 이는 그가 당시 부정축재자였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는 구절은 삭개오가 <청결한 자>가 되기를 바랐던 부모의 소원과는 정반대로 살아온 부정축재자였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마침내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삭개오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이름값은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소유한 우리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삶, 즉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할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 중에서 그리스도인의 언어습관에 대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말하는 태도가 달라야 하고 사용하는 단어도 달라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5: 4에서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가르칩니다. <누추한 말>이란 <추잡하고 수치스럽고 격에 맞지 않는 부끄러운 말>을 뜻합니다. <어리석은 말>이란 <아무런 의미 없는 말이나 생각 없이 던지는 쓸모없는 말이나 빈 말>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경박하고 쓸데없는 말을 입에 담아서는 안 됩니다. <희롱의 말>은 <분명한 의미로 말하는 게 아니라 이중적 의미로 하는 말>이나 <변덕스럽고 빤질거리는 말>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선명하고 분명한 사람이어야 하고, 변덕스럽거나 빤질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바울을 가르침은 단순히 말 몇 마디에 관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철저한 삶의 변화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언어의 변화는 곧 삶의 변화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말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언어는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야 할 우리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요, 또한 그 무엇보다도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서로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에 그리스도인은 말하는 삶에 있어서 분명한 변화를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말 한 마디는 사람을 살리기도 하기에 매우 중요한 삶의 요소입니다. 성경은 많은 곳에서 말의 중요성을 되풀이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를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잠 18:21),"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 3: 6, 8)."
말은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다시 돌아옵니다. 즉 입에서 나간 말은 이웃에게만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결국 다시 돌아와 자신에게도 동일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말은 대단히 중요한 삶의 요소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 점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스로 보전하느니라(잠 14: 3),"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의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잠 12:14)."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말은 언젠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기 되기 때문에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판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6-37)." "또한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 139: 4)"라는 다윗의 고백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말을 아시고 기억하십니다. 심지어는 소리 없는 독백까지 아시고 기억하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입술이 복된 입술이 되도록 애쓰고 힘써야 할 것입니다.
글쓴이: 윤동현 목사, 한인제일연합감리교회 CA 올린날: 2009년 11월 3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