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름 받아 나선 이 몸 로마서 1:1-7 로마서를 읽다보면 사도 바울의 유언장을 보는 것 같다. 실제로 3차 세계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직전 바울은 비장한 각오로 로마서를 고린도에서 썼다. 자기를 죽으려는 유대 지도자들의 음모가 빤히 내다보이는 예루살렘 여행길. 사느냐 죽느냐 이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 바울은 그의 최후 선교지 로마에 대한 열정으로 로마서를 집필했다. 그러므로 로마서에는 바울 신앙의 핵심이 담겨 있는데 바로 '구원의 복음'이었다. The Gospel of Salvation.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구원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로마서를 썼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학자 Peter Stuhlmacher 박사는 로마서를 이렇게 평했다. "성경 안에서 로마서야 말로 기독교 신앙의 교과서입니다." Within the biblical canon, the letter to Romans has become a 'textbook' for the Christian faith. 오늘부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주일마다 성령께 기도하는 가운데 이토록 소중한 로마서를 자세히 풀어 설교하길 원한다.
I. 로마서를 열면 첫 장 첫 절에 바울의 자기소개가 나온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답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던 로마교회 교우들에게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 정중하게 밝힌 것이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1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Paul, a servant of Christ Jesus, called to be an apostle and set apart for the gospel of God. 예수 믿는 사람은 예의가 발라야 한다.
1.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I am a servant of Jesus Christ. 지금은 편안하게 아멘 하지만 당시 로마교회 교우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왜냐하면 '종' 'doulos'라는 신분은 당시 로마사회에서 가장 비천한 노예를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주인은 종의 귀에 구멍을 뚫고 팔뚝에 불도장을 찍어 그로 하여금 노예의 굴레를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노예에게는 소유도 자기 뜻도 없었다. 주인이 가라 하면 가고 일하라 하면 일하고 쉬라 하면 쉴 뿐이다. 죽자고 일해도 모든 이익과 영예는 주인의 것이 되었다. 노예의 일생은 이토록 비참한 것이었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doulos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바울은 공개적으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께 매인 doulos 노예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것은 그가 겸손해서가 아니라 예수의 종 됨을 기뻐했기 때문이다. 사실 바울은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자존심 강한 인물이다. 누구 앞에서도 쉽게 머리 숙이지 않는 교만하기 그지없던 사람이다. 그런 바울이 예수의 노예가 된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간단하다. 임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렇게도 무시하고 핍박하던 예수님과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로 가던 도중 맞부딪쳤다. 죽은 줄만 알았던 그 분이 너무나 또렷하게 그에게 나타난 것이다. 순간 예수에 대한 실체를 깨달았다. "당신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부활하신 예수 앞에 무릎 꿇고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한 도마처럼 바울도 그랬다. "예수님, 당신은 하나님, 나는 당신의 노예입니다."
어차피 인간은 누군가의 종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하나님의 종이 되지 못하면 사람의 종이 되고, 죄악의 종이 된다. 돈이나 명예나 육체의 노예로 살아간다. 어떤가? 이왕이면 사도 바울처럼 천상천하에 제일 높으신 하나님의 종이 되고 싶지 않은가? 만민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은가? 여기 그 길이 있다. 예수님을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드리면 된다. 그럴 때 주의 은총으로 그분에게 속한 종이 될 것이다. 아무쪼록 바울처럼 예수와의 만남을 통해 이렇게 외치며 살기를 바란다. "나는 예수님의 종입니다."
2. 나는 사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사도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로 대문자 A로 시작하는 Apostles인데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와 배반자 가롯 유다 대신 사도가 된 맛디아 그리고 바울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어느 누구도 사도가 될 수 없다. 두 번째 사도는 소문자로 시작한 apostle 인데 apo(from a distance)라는 접두사와 stello(prepare)라는 동사의 합성어인 apostelo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뜻은 sent one to prepare from a distance 즉 무엇을 준비하도록 보냄을 받은 사람이다. 그렇다. 사도는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받아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종이다. 'sent one with special mission' 부름 받은 이런 의미에 볼 때 사도를 사명자요 사역자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것은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사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파송하시는 하나님의 부름이 선행되어야 한다. 사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종이다.
Calling은 이토록 중요한 것인데 성경에는 두 가지 '부름'이 있다. 1) 구원을 위한 부름이 있다.(a call to salvation) 예수님은 소경 거지 바디매오를 부르셨다. 바디매오야! 그의 눈을 뜨게 해주기 위함이었다. 주님은 현실적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는 이들을 구원하시려고 부르신다. 삭개오야! 예수님은 여리고성의 세무서장을 불렀다. 그의 영혼을 구원해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예수의 부르심에는 자격 제한이 없다. 차별도 없다. 모든 사람을 부르신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구원을 위해 사람들을 부르신다. 단 부르심에 아멘으로 응답하는 이들에게 구원의 은혜가 주어진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2) 사역을 위한 부름이 있다.(a call to ministry) 아브라함아! 하나님은 믿음의 역사를 이 땅에 펼치기 위해 아브라함을 불렀다. 당신의 백성을 고난 중에서 건져내기 위해 이집트의 왕자 모세를 부르셨다. 광야 40년에 지쳐있는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기 위해 장군 여호수아를 부르셨다. 이방민족들에게 짓밟혀 역경 중에 처한 백성을 구해주기 위해 삼손, 기드온, 입다 같은 사사들을 부르셨다. 거룩한 왕권을 계승시키려고 사무엘과 소년 다윗을 부르셨다. 흑암 속에 처한 사람들에게 광명의 빛을 전해주기 위해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같은 예언자들을 부르셨다. 예수님은 복음전파 사역을 맡기려고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과 같은 갈릴리 어부들을 비롯하여 세리 마태 그리고 열혈당원 가롯 유다를 부르셨다. 그렇다. 주님은 때마다 당신의 사역을 이루기 위해 종으로 사도로 부르신다. 그런데 이 부름에는 특별한 결단을 내리는 사람만이 합당하다. 예수님 말씀하신 대로 죽기를 각오하고 나서야 한다. 마 16:24-25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도 바울은 이 같은 주의 부르심을 확실하게 체험했다. 예수님이 비추시는 강렬한 빛으로 땅바닥에 쓰러진 바울을 향해 주님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어서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 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누가 이르리라." 여기에서 행할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었다. 이방인들을 향한 사도. 바울은 이 부르심을 소중이 여겼다. 그래서 지금 로마교회 교우들에게 기쁨으로 고백한 것이다. "나는 부름 받은 예수의 종이요, 그분을 위한 사도입니다."
특히 그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택정함 입었음을 최고의 영광으로 삼았다. I set apart for the gospel of God. 여기서 택정함을 입었다는 말은 원래 "한계선" Horizon 에서 유래되었는데 일정한 한계선을 두고 다른 사람들과 거룩하게 구별시켜주었다는 뜻이다. 그렇다. 바울은 하나님이 당신의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 부르신 후 더럽고 추악하고 비열했던 자신을 성별시켜 주셨음을 무엇보다 자랑스러워했다. "나는 과거의 사울이 아니라 복음전파를 위해 부름 받은 성도 바울입니다." 그는 로마교회 교우들 앞에서 찬송가 335장 1절을 부르고 싶었을 것이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아멘.
II.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교회 교우들을 향해 외쳤다. "여러분도 나처럼 예수로부터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6절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저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물로 부름 받았음을 선포한 것이다. 그렇다. 누구든지 예수의 부르심에 아멘으로 응답할 때 그분의 종이 된다. 아멘.
7절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거룩히 택정 받은 것처럼 로마교회 교우들 역시 주의 부름을 받아 거룩한 사람들 곧 "성도"가 되었음을 선언한 것이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입니다." 이 같은 발언은 매우 급진적이고 혁명적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은 성도란 호칭이 이스라엘 백성의 전유물로 생각해왔는데 이방인들이 대부분인 로마교회 교우들을 성도라고 불러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울의 생각은 달랐다. 성도를 유대인의 혈통으로 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과 그분의 부르심을 믿음으로 받아드린 사실에 그 근거를 두었던 것이다. 그렇다. 성도란 자신의 인격이나 행함과 관계없이 전적으로 주의 사랑과 은혜로 인해 구원받은 사람이다. 예베소서 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당신은 주의 부름 받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정말 거룩해서가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 안에 속했기 때문에 성도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보잘것없는 그릇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이면 성구가 되고 허름한 건물이라도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쓰이면 성전이 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도가 된 그 자체로 자만해서는 안 된다. 방심해서는 안 된다. Hagios가 의미하는 것 같이 성도는 부름 받은 사람답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거룩함에 이르기 위해 힘써 영성생활을 해야 한다. 성도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성도답게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땀과 눈물과 피를 흘려 헌신해야 한다. 나를 불러 성도가 되게 하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해야 한다. 성도된 이들이여, 주의 부름 받은 사람답게 사도 바울이 가장 자주 사용했던 "In Christ"처럼 내가 지금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진실 되게 점검하며 오늘을 살아가자.
부름 받아 나선 몸이 되어 험한 세상을 향해 담대히 걸어가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글쓴이: 손용억 목사, 미네소타한인연합감리교회 MN 올린날: 2009년 10월 27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