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 민족은 유달리 먹는 문제에 걱정과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불렀던 동요 가사에만도 '먹는다'는 표현은 심심찮게 등장했다. "토끼야 토끼야 산 속의 토끼야, 겨울이 되면은 무얼 먹고 사느냐." 우리는 달을 바라보아도 토끼가 떡 만들려고 절구방아를 찌는 것을 상상한다. 특히 우리가 쓰는 언어 속에는 먹는다란 단어를 통해 다양한 표현이 나타난다. 욕도 먹고, 나이도 먹고, 겁도 먹고, 챔피언도 먹고, 마음도 먹는다. 축구도 한 골 먹고, 잘 안 풀릴 때 애를 먹고, 일이 관철되지 않을 때 "씨도 안 먹힌다"고 표현한다. 군대물도 먹고, 사회물도 먹고, 심지어 여자를 따먹었다는 저속한 표현도 사용한다. 횡재를 해도 "이게 웬 떡이냐"라고 말한다. 인터넷 모임을 인터넷 카페로 표현하고, 인터넷 주소 표기 시 사용하는 '@' 기호조차 '골뱅이'라 부른다. 무엇보다 '한솥밥을 먹었다'는 데서 일종의 동질감을 느끼는 민족이 바로 우리다.
이렇듯 '먹는다'는 표현에 다양한 의미를 두는 민족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주변 강대국에 시달려 온 고단한 역사 속에서, 보릿고개를 겪으며 지내야 했던 배고픈 세월의 흐름 속에서 먹는 문제가 그만큼 중요한 관심사로 대두되었기 때문이리라. 아니, 굳이 이런 세월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육신을 가진 인간에게 먹는 문제만큼 중요한 문제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종종 쓴다.
그러나 아무리 먹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해도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음을 놓쳐선 안 된다. 그것이 무엇인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 바로 영혼의 문제이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인간이 영적으로 바로 서 있을 때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마치 마음의 문제가 육신의 병의 원인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 국가도 정신이 무너지면 가난하게 된다. 이집트를 보라. 고대에서 가장 강하고 부유했던 그 나라는 민족의 정신을 지켜주는 기초가 없었기에 지금은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한편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민족이었으나 모세오경을 중심으로 한 말씀으로 무장한 결과,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민족이 되었다.
기독교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영혼을 가진 존재"로 해석한다. 그래서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만 살 수 있다고 말씀한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직전 사탄이 광야에서 먹는 문제로 예수님을 시험할 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 고 말씀하신다.
육신을 위해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인간이 제대로 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말씀과는 정반대의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몸에 좋은 것' 이라면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먹으려고 하면서 영혼을 위한 말씀은 아무리 좋다는 것이 증명되어도 잘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크리스천의 신앙은 말씀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이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영양분이 공급되면 육신의 가지와 이파리도 싱싱하게 번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먹고 사는 문제 자체를 고민하기 전에 우리 삶의 뿌리인 말씀신앙부터 회복할 일이다. 성경 속에는 경제생활 및 경제활동의 근간이 되는 지침까지도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지침을 얼마나 잘 캐어 내 삶에 적용하느냐에 따라 먹고 사는 문제가 오히려 쉽게 해결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글쓴이: 김동윤 장로, 시카고한인제일연합감리교회 IL 올린날: 2009년 10월 13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