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었던 일 창세기 35:1~7 우리들은 흔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기 원한다고 기도합니다. 그렇다면 신령과 진정이란 어떤 뜻일까요? 무엇보다 그것은 거룩하고 참된 마음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헬라어로 예배란 말은 '프로스퀘내오'라고 하는데, '프로스'란 말은 '향한다'는 말이고 '퀴네오'란 말은 '개'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란 말은 개가 주인을 향해서 기뻐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향해 기뻐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명견은 절대로 낯선 사람에게 꼬리치지 않습니다. 경계하고 으르렁 거릴 뿐입니다. 그러나 주인을 보면 기뻐서 가만히 있질 않습니다. 쉴 새 없이 꼬리를 흔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란 하나님 뵙는 것이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런 태도로 올리는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거룩하게 예배를 드린다고 근엄한 태도와 표정을 지으며 예배에 참여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거룩이란 예배하는 시간을 세상과 구별되는 시간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 시간을 진정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런 예배를 통해, 세상의 풍파에 시달리던 영혼이 참 평안을 누리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세상에서 참 평안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세상은 그런 겁니다. 평화대신 긴장이 있을 뿐입니다. 정치판이나 비즈니스에만 긴장이 있는 게 아닙니다. 부부/형제/이웃/사제관계 등에 긴장이 있습니다. 물론 세상에서도 관계의 개선과 평화정착을 위해 여러 시도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이루려는 평화란 이해관계 위에 세워지는 것이기에 본질적으로 오래 지속될 수가 없습니다. 무조건적인 참 평화는 위로부터 임하는 것뿐입니다. 위로부터 평화가 임할 때, 가정이 평안하여 가족 간에 사랑과 우애가 넘치고, 위로부터 임하는 평화가 임할 때, 교회도 평안하여 성장하고 부흥합니다. 위로부터 임하는 평화가 임할 때, 몸도 평안하여 신진대사가 잘 이루어지고 건강합니다.
그러므로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이 없을 때, 주의 전으로 올라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근심과 걱정에 싸여 지내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며 지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야곱이 가정에 큰 어려움이 임하자 깊은 근심과 시름 빠져있는 모습을 봅니다. 이런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벧엘로 올라가라."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올림으로 근심 걱정을 덜고 참 평안을 누리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30년 전, 야곱은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를 속인 죄로 고향을 떠나 하란으로 향하던 도중 해가 짐으로 한 곳에서 유숙하게 되었습니다. 돌을 베개 삼아 새우잠을 자고 있을 때, 야곱은 신비한 경험을 합니다. 사다리가 하늘에 닿았는데 천사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고, 그 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서신 꿈을 꾼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리라."(창28:15)
이에 야곱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자신이 베고 자던 돌베개를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쏟아 붓고 서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28:20-22) 그리고 야곱은 그 곳을 하나님의 전이라 하여 벧엘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원래 이름은 루스였으니까, 벧엘이란 지명은 이제 하나님과 야곱 사이에 특별한 이름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야곱이 타향살이를 하는 20년간 늘 함께 하셨습니다. 그 결과 야곱은 큰 부를 이루었고, 처자도 많이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마음 한 쪽에는 늘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고향을 쉽게 찾지 못하는 사정이 그를 더욱 괴롭게 했습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지자 병이 될 지경이었습니다. 물질의 풍성함도 사랑스런 처자도 그 병을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야곱은 큰 결심을 하였습니다. 고향 길에 오른 것입니다. 많은 예물을 앞서 보내고, 처자를 보낸 후,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밤이 새도록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형, 에서의 마음을 녹여주시어, 동생 야곱을 환대하게 하심으로 야곱은 마침내 고향 땅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 지 보세요. 하나님의 세밀하신 섭리가운데 고향 땅을 밟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가나안 땅으로 귀환한 후 10년이 지나도록 서원을 이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고향에 돌아온 야곱은 세겜에 정착을 했습니다. 세겜은 와 벧엘에서 불과 48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역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벧엘의 서원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합니다. 범사란 평범한 일을 의미합니다. 평범한 일이란 당연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란 말씀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평범한 일속에서 감사를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이 야곱에게 베푸신 은혜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온 맘으로 감사해야 할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10년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래도 야곱은 도무지 벧엘의 서원을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감사는 고사하고 그곳을 찾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즈음 야곱의 가정에 어둠이 드리워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 내용이 창34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성의 추장인 하몰의 아들에게 강간을 당한 사건입니다. 하몰의 아들은 디나를 강간한 후, 정식으로 디나를 아내로 맞이하려고 청혼을 하지만, 디나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 지파를 멸족시키는 피의 복수를 감행합니다.
이 일로 야곱은 딸의 일로 심적 고통을 겪게 됨은 물론, 인근 족속으로부터 살해위협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큰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을 꾸짖는 내용에게 그가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 알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창34:30)
야곱은 두려웠습니다. 이제까지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질 것이 두려웠고, 함께 섞여 지내던 그 땅 사람들이 두려웠습니다. 그들이 합쳐 가족을 죽이지는 않을까 하는 공포가 몰려왔습니다. 근심과 걱정이 임하며 참 평안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은 그때나마 야곱이 하나님을 찾았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은 인생의 가장 큰 위기를 지나면서 하나님을 생각한 것입니다. 아마도 야곱은 비통한 마음으로 탄식하는 푸념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렸을 것입니다.
일이 막히고 안 되어 깊은 절망에 빠질 때, 자신의 잘못을 보기보다는 어떡해서든 외부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 하는 죄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괜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가까운 가족을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또 하나님이 자신을 잊어버렸다고 푸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냐고 원망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번 택한 사람을 잊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잊고 제 멋대로 사는 경우는 있어도 하나님은 늘 우리를 생각하십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이49:16)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겪는 고난 중에 그런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응답이 야곱에게 임했습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창35:1) 하나님은 야곱이 그 고난의 수렁에서 나올 수 있는 길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루스'로 올라오지 않고 그와 하나님만 알고 있는 '벧엘'로 올라 오라하셨습니다. 이 순간 야곱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아마도 야곱은 얼굴을 들지 못했을 겁니다. 양심이 크게 찔렸을 겁니다. 그간 망각하고 있었던, 아니 어쩌면 의도적으로 잊으려 했던, 하나님과의 약속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30년 전에 집을 떠나 외로움과 두려움에 하란을 향하고 있을 때, 하나님과 맺은 약속입니다.
류시화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이란 책에서 인상적인 글귀를 눈길이 한 참 머문 적이 있습니다. "눈에 눈물이 없으면 그 영혼에 무지개가 없다." 우리의 영혼에 무지개가 없는 삶은 희망이 없다는 뜻입니다. 희망 없는 인생은 이미 죽은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고통도 때로는 귀한 겁니다. 인생의 고통을 당할 때, 우리 눈에는 눈물이 흐릅니다. 그러나 그 눈물이 우리를 하나님께 이끄는, 회개케 하는 눈물이라면 그 눈물의 가치는 값으로 매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에 희망이라는 무지개를 드리우는 눈물이기 때문입니다.
디나 사건은 야곱의 눈에서 눈물이 쏙 빠지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일로 야곱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야곱의 눈물은 회개의 눈물이 되어 그를 하나님께로 이끌었습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3절) 야곱은 이와 함께 모든 식솔들로 하여금 이방신상을 버리고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꿔 입도록 조치했습니다. 모든 부정한 것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벧엘을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은혜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5절을 보세요.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 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하나님이 눈물로 회개한 야곱의 영혼에 무지개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미국에서 병원엘 가면 의사들이 참 친절하다는 느낌을 다 받습니다. 그런데 수년 전, 나는 단순히 인간적인 친절을 넘어 한 영혼을 사랑하는 의사를 보고 감동한 적이 있습니다. Daniel Chen이라는 중국출신 의사였습니다. 예약시간에 맞춰서 그의 Office에 도착했을 때입니다. 환자 대기실에서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이 한 환자를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가 Dr. Chen이었습니다. 목회를 해 오는 동안 신실한 의사들을 몇 분 만나기는 하였어도, Dr. Chen처럼 병원에서 환자를 위해 기도하는 의사는 처음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제 느낌을 전했습니다. "당신이 조금 전에 환자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게 깊은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그 환자는 에이즈 말기 환자입니다. 그리고 저는 의사이지만 또한 주일이면 교회에서 설교를 하는 평신도 설교자입니다. 제가 지금 저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치료에 앞서 기도이지요." 그는 만병의 의원 되신 주께서 환자의 치료에 함께 하시기를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을 구별하여 예배를 드리고 그 시간을 기뻐함으로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무슨 일을 만나든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나가는 삶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그런 삶을 기억하시며 축복하십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3:l3을 보면 '환란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은 온통 환난과 고난, 어려움뿐인데... 감사할 일이 있어야지 하는 생각에, 감사와 찬양을 잃어버리고 살아온 분이 계시다면, 여러분의 벧엘로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혹 서원을 하고 시행하지 못한 일이 있거든 행하십시오. 그 일을 이루기 위해 끊어야 할 일이 있다면, 야곱이 온 가족들에게 이방신상을 버리고 정결케 하는 의복으로 갈아입혔듯이, 버리고 끊고 바꾸십시오. 그래야 새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다시 무엇을 하든 어디서든 여호와의 이름을 높여 부르며 전진하십시오. 그 순간 좋으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체험하실 것입니다.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시13:5)
글쓴이: 이철구 목사, 디트로이트중앙연합감리교회 MI 올린날: 2009년 10월 12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 |